[이슈진단]전기차 시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Post date: Oct 18, 2011 12:10:38 PM

[경제투데이 임의택 기자] 1886년 벤츠에 의해 휘발유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이래 자동차의 연료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이브리드카와 연료전지차, 전기차 등 다양한 차세대 자동차가 개발되는 지금도 주류는 여전히 휘발유를 비롯한 내연기관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가올 10년 동안에는 이러한 흐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갈수록 혼잡해지는 도심 교통에 따른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데다, 언젠가 고갈될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공급 체계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자동차의 흐름은 아직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기차의 개발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료전지차 역시 동력을 전기에 의존하는 것은 전기차와 같지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수소충전소 건립이 지지부진하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전기충전소와 전기차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어떻게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고 있을까?

미국은 실증사업과 인프라구축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5000대 규모의 닛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실증을 완료했다. 특히 충전인프라 부분에서는 주요 고속도로 부근 트럭 휴게소 50곳에 충전인프라 구축 및 보조금 지급을 정부차원에서 마친 상태다.

영국은 정부 및 런던시를 중심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 외에도, 런던시가 독자적으로 전기자동차 10만대 보급계획을 수립해서 실천에 나서고 있다. 특히 2012년까지 3마일 범위를 기준으로 급속 충전기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며, 신축 주차장의 20% 면적에 충전장치 설치 및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보유한 나라로(2010년 기준 8000대) 충전 인프라를 국유전력회사인 EDF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전기차 및 충전인프라에 25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며, 전기차 구매자에게 5000유로를 환급해주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급속 충전기 가격의 50%를 설치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독자적인 보조금을 별도 지급하고 있다(도쿄도, 가나가와현 등). 충전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확립 및 확산을 위한 실증실험에 2009년에만 20억엔의 예산을 지원했으며 시범 타운 지정을 통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또한 2008년 르노-닛산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충전소 50만개를 설치할 것을 협약했으며, 2011년부터 1000개의 충전소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들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기차 개발도 늦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인프라 구축이 거의 안 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충전 방식을 택해야 할까. 지금까지 개발된 충전 방식을 알아보자.

◆사용자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충전 모델 등장

전기차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충전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현재 시장에는 On-site 충전(주유식 충전), 배터리 교체, 비접촉식 충전 등 다양한 형태의 충전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On-site 충전은 충전 장소에 따라 가정용과 공용으로 나뉘며, 충전 시간에 따라 완속 충전과 짧은 시간에 많은 전력을 차량에 공급하는 급속 충전 방식으로 구분된다. 가정용 충전은 개인 주택의 차고에서 가정용 전원을 사용해 충전하며, 아파트 주거 형태가 많은 국내보다 미국 등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공용 충전은 도로 상이나 빌딩, 대형 할인점 등 사람들의 활동이 많은 지역에 스탠드 형태로 설치된 시설을 이용해 충전하는 모델이다. 아직 충전 표준화 문제가 존재하지만,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형태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On-site 충전 방식 내 여러 모델은 상호 보완하는 형태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한편, 배터리 교체는 휴대폰 배터리를 바꿔 끼우듯이 자동차의 배터리를 임대 또는 공유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가 제안해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2008년 이스라엘에서 첫선을 보였고 올해 5월 본격적인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업체, 서비스 운영회사의 이해관계와 배터리 규격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은 향후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비접촉식 충전은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 대신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한 방법이다. 충전기 쪽의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자동차 쪽의 코일에서 전류가 생성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최근 닛산, 토요타, GM 등 자동차 제조업체 주도로 실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설비가 복잡해서 가격이 높고 코일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효율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어 상용화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상태다.

◆편의성 확보 위한 과제 ‘산적’

경쟁력 있는 충전 시간, 전기차 충전소의 커버리지 등 편의성이 보장되지 않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설사 구축된다 해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충전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많다.

충전 시간은 기존 자동차의 주유 서비스에서 느낄 수 있는 편리함을 훼손해서는 곤란하다. 전기차를 소유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 자동차처럼 언제든지 필요할 때 짧은 시간 내 충전하기를 원한다. 주행 중에 배터리가 소진되어 길가에서 대여섯 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한다면, 전기차는 오히려 불편한 존재로 전락한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배터리 용량을 20kWh로 봤을 때, On-site 충전이나 배터리 교환은 일반 교류 전원으로 충전 시 5~6시간(220V, 15A 규격 기준), 또는 2~3시간(220V, 30A 규격 기준)이 걸린다. 반면 직류 전원을 이용하는 급속 충전은 15~30분 정도에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충전소 위치, 목적에 따라 충전 형태가 다르겠지만, 충전 시간의 단축은 기존 운전 패턴의 변화를 싫어하는 다수 소비자들을 고려한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적 해결 과제다.

충전 인프라의 구체적인 규모는 지역 특성, 사용자 특성, 인구 및 면적 대비 전기차 보급률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기차 사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과도하지 않은 충전소 숫자가 어느 정도가 될지 현재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 도쿄전력은 전기차 실증사업을 전개하면서 전기차의 이용 행태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 왔다. 흥미로운 실험 중 하나가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이루어진 거리에 대한 전기차 이용자의 불안 심리와 충전시설 간의 관계에 대한 실험이었다. 충전 인프라가 적을 때에는 사용자의 주행 거리가 실제 가능 주행 거리보다 짧았고, 배터리 재충전 이전의 저장 잔량도 50~80%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나서의 양상을 살펴보았더니 전기차의 활동 범위가 훨씬 넓어졌음에도, 재충전 시 배터리 잔량은 10~50% 수준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필요할 때 언제라도 충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전기차의 이용 행태에 큰 영향을 준 실험으로, 충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면 전기차 사용자의 심리적 불안감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쿄전력의 사례는 전기차 보급 초기에 충전 인프라가 전기차 소비를 견인해 나가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여 준다.

기술 표준화 문제도 중요하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대해 각국별로 콘센트와 플러그 문제 등 다양한 규격이 시도되는 상황으로, 표준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미국 중심의 SAE(북미자동차협회), IEEE(미국전기전자학회), UL(미국비영리안전·시험인증기관)와 유럽의 IEC(국제전기표준회의), 일본의 JEVS(일본전기차협회 규격) 등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규격이 제시된 상황이다. 표준화는 다수 업체의 관계나 경쟁, 자국 산업 육성 등 지역별, 기업별 이해관계가 복잡하므로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호환성마저 충족되지 않는다면 전기차 사용자들에게 더 큰 불편을 초래한다.

그 밖에 과금 문제도 걸림돌이다. 가정용 충전의 경우 현재 누진제의 요금 체계 부담을 줄여주고,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충전할 경우에는 새로운 과금 체계가 필요하다. 사용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사용료와 편리하고 안전한 결제 시스템 구축 등의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관 협력 중시하는 ‘일본’ vs 정부 주도의 ‘중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녹색 혁명의 일환으로서 전기차 보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각국은 저마다의 여건에 맞는 충전 인프라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기차 보급 속도 제고에 힘을 쏟는 중이다.

일본은 앞선 전기차 기술을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충전 인프라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2009년부터 정부 지원 아래 지방자치단체별로 인프라 정비를 동반한 실증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본격 보급 시기를 대비, 민간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충전 인프라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도시바는 전력 네트워크 제어 기술과 스마트 미터기의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력망과 전기차를 연결하고 관리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정용 충전의 어려움이 있는 수도권의 경우, 급속 충전소 완비에 중점을 두고 완속 충전을 부가적으로 구축하면서 충전 방식의 상호 보완을 이루어갈 전망이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는 사회 전반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국가 전체 전기차 산업 활성화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커 보인다.

또한, 전기차의 본격적인 보급 단계를 맞아 민간 주도의 산업 주도권 확보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토요타, 닛산, 미쓰비시, 후지중공업 등 자동차 제조업체와 도쿄전력 등을 중심으로 한 ‘급속 충전기 인프라 추진협의회’(CHAdeMO)는 전 세계적으로 효율적인 충전기 보급과 급속 충전기와 관련된 시스템의 국제 표준화 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급속 충전기로 여러 제조사의 전기차를 모두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은 표준화에서 큰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쓰비시 상사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고속도로회사, 도쿄전력, 편의점과 연계해 전국적인 충전시설 확충을 계획 중이다. 주요 도시와 간선도로변에 2012년까지 1000개의 유료 충전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경우, 일본과 비교하면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충전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이다. 아직 충전 인프라 구축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기 관련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전기차 충전소 건설 관련 실행 안이 발표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국가전력망공사는 140억 위안을 들여 향후 5년간 충전소를 4000개 건설할 예정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180억 위안을 추가 투자해 충전소를 1만 개로 확충할 계획이다. 또한, 3대 정유회사 중 하나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는 션전, 항저우, 상하이, 창춘, 허페이 등 지방정부와 함께 배터리 충전소망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인프라 확대 노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더욱 역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은 적극적인 정부의 투자 지원 활동에 바탕을 둔 새로운 글로벌 전기차의 테스트베드로서 성장을 모색 중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지만,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취약한 중국은 일본처럼 자국 중심의 전기차 기술 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자국의 거대 시장 기반을 이용해 해외 자동차 업체와의 제휴와 참여 확대를 유도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술 개발 및 인프라 확충이 가속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닛산은 중국 우한시에 2011년부터 3년간 전기차 300대를 시범 운행하기로 했으며, 전기차 보급 촉진 및 충전 네트워크 구축에 다각도로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보조금 및 지원 혜택을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해외 기업들의 기술이전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중국의 전기차 시장에 대한 산업 주도권 확보 의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충전 인프라 구축에 대한 구체적 논의 필요

지금까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전망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의 기술 발전과 함께 다양한 전기차가 출시되고, 에너지 및 환경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추세다.

최근까지 클린 디젤 위주로 보급을 추진하던 유럽 자동차 업체들도 이제는 전기차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전기차 보급 속도 제고와 관련 산업의 주도권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작년 12월 ‘그린카 발전 로드맵’ 발표를 통해 전기차 산업 육성에 대한 나타낸 바 있다. 2015년까지 소형차에서 버스에 이르는 다양한 전기차를 양산함과 동시에 충전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전기차 보급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충전 인프라 구축은 초기 단계로서 출발이 다소 늦은 편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와 인센티브가 먼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통합적인 실증 및 보급 체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LG경제연구원 하일곤 연구원은 “충전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전기차의 보급과 전기차 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전기차 산업의 발전이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맞는 최적의 충전 인프라 구축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충전 인프라 구축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기차의 수요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등을 파악해 적정한 충전 인프라의 규모를 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충전 인프라 구축의 bottleneck(병목 현상) 해결도 필요하다. 각국의 충전 표준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표준화에 대비해야 하며, 다양한 실증 사업을 통해 충전 시스템의 안정성, 과금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

한편, 기업의 입장에서는 충전 인프라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기회에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급속 충전 설비에 2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할 정도로 기업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규모와 성장 잠재력을 판단할 때, 지금부터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점진적으로 역량을 확보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 / 임의택 기자 ferrari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