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전기차 ‘티핑 포인트’…휘발유 수요 ‘휘청’

Post date: Aug 22, 2017 4:14:50 PM

빨라지는 전기차 ‘티핑 포인트’…휘발유 수요 ‘휘청’

한상희 기자hsh@ekn.kr 2017.08.21 07:41:27

  ▲(사진=연합)

내연기관의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간 자동차의 역사를 이끌어 온 내연기관차가 100년만에 퇴조하고 전기차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의 확산이 당장 화석연료 산업을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시장원리에 따라 향후 10년 안에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의 확산으로 휘발유 수요가 구조적 둔화세에 접어들면서, 대체 연료가 빠르게 휘발유 수요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각국 정부와 전통 자동차 회사들 사이에서도 운송수단의 거대한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울렸다.

프랑스 정부는 2025년부터 모든 디젤차의 운행을 금지하고, 2040년부터는 아예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영국에선 아예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도 2040년부터 금지된다. 대기오염으로 매년 국민 4만 여 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30억 파운드(한화 4조 4131억 5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정책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의 9개주는 자동차 업체에 일정비율 이상의 전기차를 의무적으로 생산토록 하고 있다.

폭스바겐도 10년 내에 30차 종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만들기로 했고, 중국이 인수한 스웨덴의 볼보는 2019년 이후에 전기차만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전기차 강국인 일본 자동차 업계의 경우, 하이브리드 차량에만 주력해왔던 도요타는 순수 전기차 생산 라인을 갖추고 2019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모두가 전기차 100% 시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자들은 전기차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벽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최근 정부와 자동차 회사들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목표는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높은 소유 비용, 낮은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 미비 등 다수의 결점들이 전기차의 확산을 제한할 것"이라면서 "전기차의 전력 수요가 휘발유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때문에 발레로 에너지, 마라톤 석유, 엑손모빌 등 정유회사가 휘발유 소비 둔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전기차의 판매 비중이 전체 자동차 시장의 0.2%에 불과한 시점에서 인프라 등 미비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줄리안 리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지나친 비관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에너지경제신문 DB)

150∼200마일이 휘발유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낮다고 하더라도, 200마일(322㎞)은 서울에서 대구를 돌파할 수 있는 거리다. 출퇴근용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충분한 수준이다.

사실 수송 부문은 오랫동안 원유시장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항공/승용차/트럭은 경질유를, 선박은 중질유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정유소는 수송 연료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설계됐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가공·처리되는 원유 중 75% 이상은 수송연료로 생산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최근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 내에서는 42갤런의 원유로 45갤런의 석유정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 중 약 75% 해당하는 35갤런이 휘발유, 디젤유, 항공유로 가공된다"고 밝혔다. 또 BP세계 에너지 통계 리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소비된 액체 연료 중 70%가 디젤/가솔린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정유업계 내에서 수송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전기차로의 전환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소유비용, 친환경성 등 일련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기차 시장은 일단 궤도에 진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하루에 소비되는 수송 연료 중 올해 약 10만 배럴, 내년 15만5000배럴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체되는 연료의 대부분은 휘발유일 것이라고 BNEF는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전기차가 휘발유 수요를 대체한다 하더라도, 전체 휘발유 소비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BP는 2016년 일일 휘발유 소비가 2500만 배럴 이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리 칼럼니스트는 "이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면서 "전기차의 확산 속도는 정제회사들의 마진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것"으로 경고했다.

리 칼럼니스트는 대표적으로 테슬라의 양산형 전기차 ‘모델 3’의 사례를 들었다. 이달 첫 고객 인도를 시작한 모델 3의 배송이 본격화할 경우 일일 1만8000배럴의 휘발유 수요를 대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현재 테슬라가 밝힌 예약건수 45만5000대와 미국교통국이 발표한 주행마일수, 연료 소비 지표를 근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문제는 대체 수요가 2018년 미국의 일일 휘발유 수요가 2만5000배럴 증가할 것이라는 EIA의 최근 발표 수치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리 칼럼니스트는 "만약 EIA의 전망치가 테슬라의 신규 출시 차량을 고려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휘발유 수요 성장률은 제로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이는 미국에 국한한 이야기다. 전세계로 시야를 넓힐 경우 전기차의 ‘티핑 포인트’는 아직 갈길이 멀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2018년 세계 휘발유 수요가 일일 24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BNEF는 전기차가 2020년 이전까지 단 29만 배럴의 휘발유 디젤유 수요만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12%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2025년까지 꾸준히 전기차 판매 대수가 증가한다면 휘발유 수요 성장세를 둔화시키에 충분하다는 게 BNEF의 주장이다.

줄리안 리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전기차가 휘발유차를 넘어서더라도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휘발유 정제업자들은 빠르게 목을 조여오는 전기차의 도전에 수익이 지속적으로 둔화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