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고종황제의 어차(御車)

Post date: Jan 3, 2011 9:46:15 PM

▲ 포드(Ford) 모델 'A'

고종황제 40주년 행사에 쓰일 목적으로 들여온 '포드' 자동차

조선왕조 말 26대 임금이던 고종황제는 40여년이란 긴 재위 기간으로 다양한 변화의 물결과 일제의 치하에 치욕을 겪기도한 조선의 왕이었습니다.

1876년 인천, 군산, 부산의 개항으로 외국인과 더불어 그들의 물품이 국내에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지러운 나라 사정에도 불구하고 1903년 재위 40주년을 맞은 고종황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잔치는 광무대라는 곳에서 열렸으며, 이것을 기념하기위해 지방마다 흥을 돋울 광대들을 불러모아 장악원에서 연습을 시키는 등 다양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칭경식(稱慶式)'이라 명명하였습니다.

 

▲ 고종황제와 고종황제 외출모습

이러한 나라의 큰 잔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위해 탁지부(현 재경부) 대신은 고종황제가 궁궐에서 광무대까지 가는 길을 마차가 아닌 서양문물인 자동차로 할 것을 적극 권유하였습니다. 어려운 나라살림 때문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탁지부 대신의 권유에 따라 차량 1대를 수입하도록 결정하였으며, 관리들에게 기념으로 하사하기 위해 인력거 100대를 수입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하라는 고종황제의 명이 떨어진 후 탁지부 대신은 미국 공사로 재직하며 선교사이자 고종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하던 알렌에게 자동차 1대를 수입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알렌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 당시 미국의 자동차 딜러였던 '프레이저'에게 부탁하여 포드의 모델'A' 승용차 1대를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를 통해 인천항에 들어온 '포드 모델 A'는 경인선을 이용해 궁궐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칭경식'이 끝난 후 수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차는 2인승 오픈카로 당시엔 국내에는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일본인 기사를 고용해 운전을 맡겼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 힘들게 도착한 이후 시끄럽고 가벼워 보이는 자동차는 왕의 위엄을 떨어뜨린다 하여 임금님 행차에는 사용하지 못하고 궁 안에서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최초의 수입차는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못하였고,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나고 혼란이 계속되자 더 이상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한일 병탄' 이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자리를 함께 한 고종황제(앞줄 중앙)와 테라우치

대중들은 1910년 치욕적인 한일 합방 후 총독으로 부임한 테라우찌에 의해 자동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테라우찌는 자신의 차와 함께 고종화제의 어차(御車)도 같이 들여오도록 하였는데, 당시 리무진을 만들던 영국의 다임러 회사에 고종황제의 어차를, 웨슬리회사에 테라우찌 총독용 차를 각각 주문해 들여온 것입니다.

이 중 고종황제의 6기통 다임러 리무진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데 당시 10대 밖에 제작되지 않았던 이차량은 외관이 녹쓸고 손상되었을 뿐 부품이 손상되지 않아 한국이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단 하나뿐인 차량입니다.

 

▲ 다임러 리무진과 캐딜락 리무진

이 외에도 1913년 왕실에서 마지막 임금인 순종황제를 위해 들여온 1912년식 캐딜락 리무진 역시 당시 20대 정도 밖에 만들지 않은 희귀 차로 현재까지 국내에 보존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 4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출처: 디씨인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