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개조비 750만원으로 전기차 타는 방법

Post date: Dec 29, 2012 10:24:42 AM

 최근 자동차 구동시스템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새로운 구동시스템이 바로 하이브리드다.

 하이브리드란 '잡종 혹은 교잡'이란 의미로 자동차에서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종류의 동력발생장치 혹은 에너지변환기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자동차회사는 지금까지 사용된 휘발유 혹은 디젤엔진과 같은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효율과 친환경성이 뛰어난 동력변환기가 개발된다면 구동시스템은 언제든지 바뀔 가능성 또한 남아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전문가, 특히 구동시스템 엔지니어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전기모터가 궁극적으로 바퀴를 구동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모터는 회전이 '제로(0)'부터 최고 값을 손쉽게 낼 수 있어서다. 엄청난 중량과 속도를 갖는 KTX나 지하철이 전기모터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만 자동차는 전기모터 사용을 위한 전기 에너지의 휴대성이 관건일 뿐이다.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해 전기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꿔 저장하는 배터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 개발 초기에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병렬로 연결된 평행형과 직렬로 연결된 직렬형이 있었고, 내연기관도 휘발유와 디젤엔진이 전부였다. 스웨덴 볼보가 하이브리드 직렬형에 소형 가스터빈을 장착해 최초로 가스터빈 하이브리드를 개발했고, 그 뒤 아우디가 하이브리드 '두오'를 개발하면서 소위 오늘날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의 전형을 선보였다. 처음으로 양산된 토요타 프리우스는 고전적 분류방법으로 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한 평행형 하이브리드다.

 2000년 들어 각 자동차회사는 하이브리드 개발과 양산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회사도 적지 않다. 아직은 하이브리드의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고, 시장 확대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하이브리드 자체의 기술력은 물론 생산과 판매, 그리고 마케팅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개발된 국산 하이브리드도 판매할 때마다 손해가 난다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영리추구 기업 입장에선 당장 판매를 접어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 선진국인 독일도 후발 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분 생산은 하지만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를 본격 대량 생산하는 일은 피하고 있다. 대신 산업전반에 걸친 튜닝과 개조업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수퍼카 제조사인 루프(Ruf)는 전기로 구동되는 포르쉐 개조 차종을 이미 출시했고, 스포츠 전기차의 대명사 테슬라와 AC 프로펄젼(Propulsion) 등 많은 업체들이 전기 혹은 하이브리드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벤츠를 전문적으로 개조하는 로린저도 경차 스마트를 하이브리드로 개조해 '이지브리드(Easybrid)' 상표로 등록하기도 했다. 30㎾ 전기모터를 뒷바퀴에 추가로 장착해 운행범위를 30㎞ 이상 늘렸고, 가속력과 최고속도 높였다. 자체 충전시스템과 함께 일반 가정용 전기로도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 인 시스템도 갖췄다.

 이지브리드는 개조비용도 저렴해 스마트의 경우 5,000유로(한화 750만원)면 가능하다. 인건비, 특히 자동차 튜닝비용이 비싼 독일에서 하이브리드 개조비용 5,000유로는 상당히 저렴한 편에 속한다. 이는 하이브리드에서 가장 비싼 배터리를 임대 사용하는 '비히클 투 그리드(V2G: Vichcle to Grid)' 개념에서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전략에 따르면 배터리회사는 전력회사와 연계해 하이브리드 사용자의 전력요금을 정산, 리스비용에 청구하게 된다. 비싼 배터리를 전력회사로부터 빌려 사용하고, 전력사용 비용에 임대료를 포함시키면 된다는 얘기다. 일정기간 이상 휴대전화를 계약할 경우 전화기를 공짜로 주는 시스템과 같다. 자동차 부품시장에선 현실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방법인 셈이다. 

 이지브리드는 뒷바퀴에 드럼형 브레이크가 장착된 소형 승용차에 적용되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폭스바겐 폴로, 르노 트윙고, 피아트 500 등에도 활용될 수 있고, 한국 내 소형차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드럼이 필요한 이유는 휠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까닭이다. 브레이크 드럼안에 회전자, 코일 등을 장착해 브레이크 드럼 전체를 전기모터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사실 바퀴와 전기모터가 하나로 집약된 방식의 휠모터는 이미 포르쉐가 초창기 자동차 구동시스템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오래된 방식이다. 스포츠카 대명사 포르쉐가 처음으로 자동차에 장착했던 게 휠모터였다니 지금 생각해 봐도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물론 당시에는 휠모터 상용화 기술력과 전기에너지의 사회적 인프라 등이 없어 발전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해결 못할 게 없다. 

 

 그간 휠모터가 각광받지 못했던 것은 전기모터와 바퀴가 일체인 탓에 전체 바퀴의 중량이 증가, 승차감이 손상된다는 이유였다. 또한 브레이크 열이 퀴리온도를 상승시켜 전기모터의 전자기력을 무너뜨리면 출력 손실이 온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퀴리온도란 방사선 원소인 라듐을 발견한 마리퀴리의 남편이자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가 발견한 것으로, 특정 금속들이 자력을 잃는 온도를 말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신소재 개발로 전자력을 잃게 되는 금속의 퀴리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됐고, 자동차 경량화와 독립 현가장치 및 완충장치 개발에 힘입어 소형차의 구동장치로 휠모터가 등장할 수 있게 됐다.

 휠모터의 가장 큰 장점은 자동차 구동시스템 혁신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데 있다.  직접 바퀴가 구동을 담당, 구동력 향상은 물론 변속기 또는 차축 같은 기계적인 연결부위가 없어 중량 감소에 따른 효율 향상도 끌어 낼 수 있다. 시대를 휠씬 앞서 간 천재 포르쉐가 쓸데 없이 휠모터를 사용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지브리드는 일개 튜닝회사인 로린저에서 개발했지만 실은 기술력이 탄탄한 독일의 여러 중소기업이 협력해 이루어졌다. 배터리 시스템 업체인 '딜 앤 이글 피혀', 전기모터 제작업체인 '유니텍', 자동차산업의 테스트 시스템회사인 '브링크메이어'와 파트너 등이 주인공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지만 전체 산업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요소산업체들이다. 결국 로린저는 이 같은 요소업체들의 제품을 모아 새로운 모듈로 조립하는 '트랜스 기술' 또는 '레고기술'을 발휘한 것 뿐이다. 

 산업 내에서 존재하는 여러 서로 다른 요소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모듈을 개발해 내는 레고기술 혹은 트랜스 기술은 특히 튜닝 업체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모듈 테크닉이 없으면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튜닝회사의 하이브리드 개발은 단순히 튜닝 시장의 변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전체 자동차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에서 전기모듈, 배터리 같은 비싼 부품을 임대 사용하는 범상한 개념도 그렇고, 트랜스 및 레고기술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선 튜닝에 대한 시각이 보다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관련법 제정 및 튜닝시장 개방에 힘써야 한다. 시끄러운 머플러 및 유리창에 썬팅이나 하는 초보적인 치장은 진정한 튜닝이 아니다. 연간 1조원에 달하는 국내 튜닝시장이 탄탄한 법제정을 통해 짜임새 있는 기술력을 차차 쌓는다면 거대한 새로운 시장 하나가 만들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경섭(베를린공대 자동차공학 석사) kyungsuplee@hotmail.com

출처 :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