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속타는 삼성

Post date: Jul 25, 2010 6:25:35 PM

 김주현 기자

ㆍ소형 2차전지는 세계 1위로 올라섰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LG화학이 선점

ㆍ10년간 올인한 ‘소형’ 시장업체 난립 ‘레드오션’ 변신

ㆍ전기차 배터리 2013년 양산시장구도 고착 될 가능성

2차전지 사업에서 삼성그룹과 LG그룹 간 명암이 갈리고 있다. 2차전지는 이건희 회장이나 구본무 회장 모두 신수종 사업으로 밀고 있는 차세대 핵심 사업이다. 삼성과 LG는 2차전지를 비롯한 신수종 사업에 23조원과 20조원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LG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 세계 자동차시장의 ‘빅3’ 중 2곳에서도 사전 주문을 받아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국내 2차전지 시장의 간판인 삼성은 LG화학이 부러운 눈치다. 초기 휴대폰·노트북에 사용되는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시장에서는 LG와의 간극차가 크게 느껴진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의 초기 대응에 실기하면서 곤욕을 치른 ‘아이폰 쇼크’가 2차전지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2차전지 주력사인 삼성SDI는 올해 세계 2차전지 시장에서 일본 산요를 제치고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소형 전지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이어 만년 2위라는 설움을 딛고 리튬이온 전지를 양산한 지 10년 만의 결실이다. 그러나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높은 데다 값싼 중국산 2차전지가 나오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졌다.

더 심각한 것은 미래 시장이다. 현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형 2차전지는 ‘레드오션’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미래 먹거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일본 전지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삼성이 당장 눈앞의 소형 전지에 매달리는 사이 LG화학은 차기 시장을 내다보고 일찌감치 전기차 배터리에 ‘올인’했다.

양 그룹 간 전략 차이는 컸다. 삼성SDI는 중소형 배터리에 주력하면서 ‘현재’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LG화학이 자타가 공인하는 ‘미래’ 2차전지 시장의 세계 1위다.

LG화학은 11월 GM이 내놓을 전기차 ‘시보레 볼트’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7개 차 업체와 일찌감치 입도선매를 했다. 현재 추진 중인 일본·유럽 자동차 업체와의 추가 계약이 성사되면 올해 안에 공급업체가 10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LG화학은 보고 있다.

삼성은 “아직 전기차는 초기 시장일 뿐”이라며 느긋한 표정이지만 속으로는 애가 탄다. LG화학이 미국 배터리공장 준공식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초청해 전기차 배터리의 1위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삼성SDI는 2008년 7월 보쉬와 합작사인 SB리모티브를 설립한 뒤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안방’인 현대·기아차를 LG에 내준 데다 해외시장에서도 2차전지 세계 1위 기업이라는 명함이 무색할 정도다. 삼성은 BMW에 2013년 이후 차량용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에 배터리를 공급키로 했다.

삼성이 양산을 시작하는 2013년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경쟁구도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 계약이 중요하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지난해 2억달러에서 2015년이면 40억달러로 6년새 20배 성장이 예상된다. LG화학과 삼성·보쉬의 SB리모티브, 산요 등 10여개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LG화학이 먼저 치고 나갔지만 특정 모델에 공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는 2015년이면 ‘후발주자’도 충분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배터리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마케팅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마케팅 노하우가 많은 보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증권 강정원 연구원은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시장이 단계식으로 커지는 게 아니라 가파른 성장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을 선점한 LG가 유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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